역사&문화 Mapo’s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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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합정동
옛 양화나루 부근의 마을로, 마을에 ‘조개우물(蛤井)’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 때 쓰기 쉬운 합정(合井) 으로 바뀌었다. 동이름이 유래한 조개우물은 지금의 절두산순교기념관 근방인데, 망나니들이 칼을 갈기 위해 판 우물 바닥에 조개껍질이 많았다고 한다. 강변도로가 생기면서 없어졌다.

망원동

망원동
한강변의 명소 망원정(望遠亭)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정자 이름 그대로 망원정 또는 망원정동(望遠亭洞)으로 부르던 것이 후에 와서 ‘정(亭)’이 생략되어 망원동으로 호칭된 것이라고 한다. 망원동은 강변의 낮고 평평한 지대인 만큼 지금도 ‘모래내’, ‘모래밭들’, ‘물춤밭들’, ‘밥풀둑들’, ‘방울내’, ‘새푸리뜰’ 등의 마을, 들, 내 이름들이 전해진다. 그 외에도 불당이 있었다고 ‘불당골’, 벽돌을 굽던 마을이라는 ‘벽돌막’,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의 ‘새말’ 등의 마을 이름도 있다. 특히 장충동의 철거민들이 정착한 망원동의 마을을 일컬 어 모래내 혹은 신망원동이라고도 불렀다. 월드컵로31길 21지역은 한강에서 올라온 가물치·잉어·메기 등과 참새가 많아 밤새도록 호롱불을 켜고 잡았다고 한다.

서강동

한강의 서쪽에 있는 강인 서강에서 유래되었다. 마포나루에서 양화나루에 이르는 한강을 ‘서강(西江)’ 혹은 ‘서호(西湖)’라고 했는데 지금의 동호대교 북단 옥수역 부근을 ‘동호(東湖)’라고 했던 것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하중동

옛 지명인 하중리(下中里)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944년 중정으로 되었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의 우리말 개정원칙에 따라 하중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인동

당인동
임진왜란 당시 이 일대에는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과 이여송의 명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중국을 당(唐)나라라고 하므로 이곳을 ‘댕말’이라 하였으며, 나중에 당인동이 되었다.

창전동

창전동
조선시대 와우산 동쪽 기슭에 공미를 쌓아둔 광흥창(廣興倉)이 있었는데, 이 창고의 앞마을이라는 뜻에서 ‘창전(倉前)’이란 이름을 얻었다. 광흥창 앞을 흐르는 창천 왼쪽에는 벼슬아치들이, 오른쪽에는 평민 이하가 살았기 때문에 이들 양반들을 일컬 어 ‘서강양반’이라 하였다. 물론 ‘서강양반’은 도성 안에서야 기를 펼 수 없는 하급관리에 불과했지만 도성 밖 강가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갓쓰고, 도포를 입은 것만 해도 대단한 행세를 하는 것이어서 창천 동쪽 사람들을 일컬어 ‘서강양반 종노릇’ 이라 는 말도 생겨났다.

노고산

산이름인 노고산의 명칭을 딴 이름으로, 서낭당 주변 마을이라 노인이 많이 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예전부터 눈병, 피부병, 속병에 효과가 있다는 약수터가 유명했다. 산자락에 있어 분고개,갓방고개, 문지울고개 등의 지명 등이 있다. 해방 후 서대문구로 편입되었다가 1964년 행정구역 변경 시 마포구에 편입되었다.

서교동/동교동

옛날 연희동 골짜기에서 흘러내렸던 개울이 이곳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흐르고 거기에 많은 잔다리(細橋,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아랫잔다리, 즉 서세교리라 불렀고, 윗잔다리는 동쪽 잔다리라하여 동세교라 불렀다. 1936년 행정구역 개편으 로 동세교리는 동교정으로, 서세교리는 서교정이 되었으며, 1946년 행정구역 개편시 각각 서교동과 동교동이 되었다.

상수동

강가의 마을 중에서 가장 위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하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텃말’이라 불린 데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새텃말’은 고려 때 이곳을 ‘신기촌(新騎村)’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이다. 1910년에는 도성 사람들 의 묘지였고, 일본인이 거주하면서부터는 일본인 매장지로 쓰이는 등 1957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하수동

한강변의 물가에 위치한 마을 중 아래쪽에 있어 하수동이라 한다.

연남동

연남동(마포구)은 연희동(서대문구)에서 분리된 새 동이 연희동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포지역에서는 가장 역사가 짧은 곳으로, 이 일대는 미나리꽝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