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Mapo’s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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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양화진나루터

양화진나루터

1989년에 세운 표석으로, ‘서울과 제물포 강호방면을 잇던 나루터’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송파진 및 한강진과 더불어 서울의 3진 중 하나로서,나루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상인들이 왕래하는 상업Y지구로서 이름을 떨친 양화나루터는 양화대교 북단 인터체인지에서 당산철교 아래와 잠두봉위의 외국인묘지까지 포함하는 일대를 가리킨다.

위치

토정로 6(합정동) 절두산순교성지 기념관 앞 한강시민공원 연결계단 아래

 

② 광흥창터

광흥창터

1890년에 세운 표석으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으로 쓰일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터’라는 문안을 통해 광흥창의 성격과 이 지역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광흥창은 경기와 삼남지방에서 바친 공미를 쌓아 두었다가 관리들의 녹봉을 주관한 곳으로,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조선 건국 초에 설치했다.

위치

창전1길 28-1(창전동) 공민왕사당 앞

 

③ 점검청지

점검청지

1995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각 지방으로부터 조운으로 운반되어 온 세공미의 수송선박을 검문하고 그 출입을 감독하는 것이 점검청(點檢廳)의 역할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수상운송 통행을 검열하던 장소로서 삼남과 황해도 지방에서 들어오는 공미를 검사하던 관청이었으며, 후에는 화물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였다.

위치

토정로 136-13(상수동) 제이엔씨빌딩 화단

 

④ 무쇠막터

무쇠막터

이 표석은 2001년에 세운 것으로, ‘정부에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바치던 철공장이 모여있던 곳’이라는 문안을 통해 무쇠막터의 유래를 알 수 있다.일찍부터 무쇠막 또는 무쇠막터로 알려졌다. 무수막에서 수철(水鐵)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신수동의 원래 이름인 수철리도 이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솥 만드는 바탕을 설치했었기 때문에 바탕거리라고도 불렀다.

위치

독막로 189(신수동) 천주교신수동교회 앞 도로(버스정류소 옆)

 

⑤ 공세청터

공세청터

2001년 설치한 표석으로, ‘조선시대에 서강나루로 들어오는 선박에 대해 세금을 거두던 기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을 통해 공세청의 기능을 명시하였다. 서강나루는 인천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세 수송선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공세청과 함께 점검청과 광흥창이 있었다. 점검청은 공물 대신 바치는 공미(貢米)를 검사하던 기관이고, 광흥창은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쌀인 봉록미를 관리하던 기관이다.

위치

독막로 145 봉원빗물펌프장 앞

 

⑥ 서강나루터

서강나루터

1987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삼개마루(용호, 마호, 서호)의 하나, 삼남지방과 서해안으로부터 곡물과 어물이 들어오던 곳’이라는 문안이 쓰여 있다.

위치

창전1길

 

⑦ 박세채 정승 살던 곳

박세채 정승 살던 곳

2003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박세채(1631~1695)는 조선후기 숙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관리이다. 유학자로 소론(少論)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사회규범으로써 예학을 일으키는 일에 전념하여 예학(禮學)의 대가라고 칭하며, 대동법의 실시를 적극 주장하였다. 그의 아호인 현석(玄石)을 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위치

신수로3길 19(현석동) 밤섬현대아파트 경비실 앞

 

⑧ 염전머릿골

염전머릿골

1995년에 설치한 표석으로, ‘한강으로 들어온 소금배가 소금을 풀어 거래하던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흥동의 동막역 부근에 소금 창고가 있었으며,마포나루에서 소금배가 이곳까지 들어와 소금전(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위치

숭문5길 8-6(염리동) 염리치안센터 왼쪽 한국통신전산지원단 담장 앞

 

⑨ 아소정터

아소정터

1995년에 세운 표석으로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별장 터'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위치

백범로 150(염리동) 서울디자인고등학교 내(정문 진입 후 오른쪽 화단)

 

⑩ 서활인서터

서활인서터

1987년에 세운 표석으로, ‘전염병자를 격리 치료하던 의료기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활인서는 고려의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조선 태종14년(1414)에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으로 바꿨다가 세종13년(1467) 동서활인서(東西活人署)로 개칭했다.

위치

마포대로 247(아현동) 아현중학교 앞

 

⑪ 독립운동 유적지

독립운동 유적지

이 표석은 1995년에 세웠는데, ‘1912년 일제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유적지’라는 문안을 통해 이 곳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길 수 있다. 해방 후 마포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어 유지되어 오다가 안양에 교도소를 새로 지으면서 없어지고 지금은 서울지방법원이 있다.

위치

마포대로 174(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왼쪽 화단

 

⑫ 선통물천

선통물천

이 표석이 설치된 시기는 자세하지 않다. 아현동617번지 터널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선통물(善通物)’이라고 쓰여 있다. 옛날 마포항에 많은 물건이 들어오면 애오개쪽에서 마포 포구로 흐르는 개천을 먼저 거슬러 올라와 장안으로 반입되었다. 다시 말해 ‘선통물’이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개천’이라는 뜻인데, 먼저 선(先) 자가 착할 선(善) 자로 바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봉원천쪽으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돌렸다.

위치

마포대로 193(아현동) 터널 입구

 

⑬ 공덕리금표

공덕리금표

1870년에 세워졌다. 지금의 공덕동 로터리에 있다가 재개발로 전 공덕2동 주민센터 앞으로 이전 되었다. 이곳으로부터 120보 거리에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는 공덕리 별장(아소정)이 있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의 문안이 새겨져 있다.

위치

마포대로 109(공덕동) 롯데캐슬프레지던트 앞

 

⑭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1997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조선 중기 명현으로 성리학자였던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살던 집터 부근인 마포구 토정동 삼성아파트 단지 입구에 설치되었다. 해방 직후까지 이곳에는 토정의 옛 집터로 전해지는 빈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옛고을 이름에 아래토정·윗토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예전부터 토정리로 불렸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위치

토정로32길 13(토정동) 한강삼성아파트 단지 내 102동 앞 시계탑 화단 내

 

⑮ 삼개포구

삼개포구

1989년에 세운 표석으로, ‘황해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던 물화 집산의 포구’라는 표석문안을 통해 마포구의 역사적·지리적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였다.

위치

마포공영주차장과 마포대림1차A(토정1길 21) 단지 사잇길 한강공원진입통로 계단

 

⑯ 3·1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3·1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1993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독립운동기념지’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군중이 오후 8시경에 이곳에 운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위치

마포로 253 다보빌딩(불교방송국) 앞 화단

 

⑰ 담담정터

담담정터

2003년에 세운 표석으로, 담담정은 조선초에 안평대군이 지은 정자였으나 세조 때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별장이 되었다. 안평대군은 이 정자에 만여 권의 책을 쌓아 두고, 시회(詩會)를 베풀었다. 신숙주는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하고,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으며 네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다. 세조는 이 정자에 거둥하여 중국의 배를 구경하고 각종 화포를 쏘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 후 이 정자 터에는 마포장(麻浦莊)이 지어져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위치

마포대로4길 122(마포동) 벽산빌라 정문 옆

 

⑱ 밤섬주민생활터

밤섬주민생활터

밤섬 내에 위치한 문화유적표석으로 1994년에 설치되었다. 표석에는 ‘조선초부터 배를 만들고 농사지으며 주민이 거주했으나 한강개발로 1968년 2월 62가구가 창전동으로 이주함’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위치

밤섬 내

 

⑲ 토정터

토정터

조선중기 저명한 역학자였던 토정 이지함의 집터이다

위치

토정길32길 11(토정동)

 

⑳ 동막 큰우물터

동막 큰우물터

약200년전 마을주민이 협동하여 조성한 "식용우물"이다.

위치

독막로266 대흥동태영아파트 후문 소공원 내